Column

멈춰서는 팬택이 못내 아쉬운 이유.

허진호 2015. 6. 8. 16:44

2015년 6월 8일, 아무런 예고 없이 팬택의 홈페이지가 내려갔다. 팬택, 아이베가, 팬택서비스 홈페이지까지도 전부 서버가 닫혔다. (오후에 iVega 사이트는 복구되었다.) 일시적인 장애일 수도 있지만 홈페이지가 살아나더라도 그리 오래가진 못할 것 같다. 이제 본격적으로 끝이 보인다. 어두운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랜턴의 빛이 반사되어 돌아오는 벽이 보인다. 그동안은 막연한 기다림이라도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더이상 힘든 듯 하다. 시장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이런 시장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회사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팬택의 청산 수순도 사실 당연한 일이다. 노키아도 무너졌고, 블랙베리도 무너졌으며, 노텔도 일찌감치 나가떨어졌다. 한때 돌풍을 일으킨 hTC도 M9의 판매부진과 함께 4분기 연속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한 유통망을 가지고, 많은 자본력을 가지고있지 않은 회사는 변화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시장논리다..


과연 잠깐이 될까 영원이 될까.


전문가들은 이런 내용들을 너무나 잘 안다. 우리나라 IT의 태동기를 함께한 전문기자들도 이같은 사실들을 모두 알고있다. '벤처신화'라는 타이틀을 가져다 붙이기에 팬택이 누렸던 영광의 시간은 매우 짧았다는 것도 잘 안다. 모두가 기억하는 그들의 제품이 품질관리가 엉망이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도 모두 잘 알고있다. 팬택의 미래가 애초부터 밝지 않았음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있다. 팬택이 망해도 업계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서서히 빛을 바래가던 기업 하나가 종지부를 찍는 것 이외에 팬택의 몰락이 시장에 주는 특별한 의미는 없을것이다.



하지만 왜 팬택의 몰락에 대해서 아쉽다는 의견이 많은가. 냉정하게 생각한다고 쿨한척 하기 이전에 이런 반응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팬택 사태는 단순한 기업의 감성팔이, 생계를 잃을 직원들의 공허한 외침이 아니다. 팬택 사태는 우리 사회를 한눈에 요약해서 보여주는, 어쩌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끝, 삼성과 LG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그런 사회의 축소판이다. 


'벤처신화'를 논하자면 팬택 말고 수많은 기업들이 있다. 벤처 1세대로는 의료기기업에서 선구적인, 벤처기업중에 처음으로 상장한 메디슨이 있었다. 삼보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카카오(現 다음카카오)는 작은 회사로 시작해 스마트폰 시대에 맞춘 발빠른 대응과 센스로 국민메신저 반열에 올랐고, 다음과 합병하며 주가를 올렸다. 안철수가 개발한 백신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안철수연구소(現 안랩)도 발빠른 국내시장 대응과 성능업그레이드, 끊임없는 성능평가 도전으로 국내외에서 우수한 백신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 검색시장에서 높은 점유율로 시장을 이끌어나가는 네이버 (과거 NHN)도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벤처 1세대였던 한글과컴퓨터도 최근 클라우드 오피스를 런칭하며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모두 가업을 물려받아 대기업이 된 회사들과는 다르게 청년들의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이루어진 회사, 즉 벤처정신이 모태인 회사들이다. 이중에서 과거의 전설로 끝난 회사들도 있고, 현재진행형 전설을 써내려가는 회사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성공한 벤처기업들과 팬택이 다른점은 바로 도전 영역이다.


안랩, 다음카카오, 네이버, 넥슨, NC소프트, 한글과컴퓨터. 흔히들 아는 이 회사들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이다. 아이리버, 팬택과 같은 회사는 제조업 회사들이다. 소프트웨어 회사는 상대적으로 제조업보다 스타트업으로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물론 시장상황은 어떤 영역에서나 녹록치 않은게 현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는 거다. 제조업이라는 영역은 굉장히 특징적이다. 하드웨어의 생산을 겸해야하며, 자체적인 생산라인을 운영해야한다. 그 탓에 수많은 장비들을 구입해야하고, 초기 투자비용이 높다. 그에 따른 리스크도 클 수밖에 없다. 투자를 하면 성과를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투자를 하면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영역. 그만큼 투자금의 회수기간도 길고 불확실하다. OEM 회사들은 생산만 하면 되지만 팬택과 같은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는 기획과 디자인, 기술개발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한다. 직접 생산만 하는 것을 넘어 제품에 탑재될 소프트웨어도 만들어야한다. 만들기만 하는가? 마케팅과 홍보를 해야 물건을 팔 수 있다. 하드웨어에 이슈가 발생하면 수리도 해줘야한다. 하드웨어를 팔려면 자체적인 유통망 (채널) 도 갖추어야 한다. 모든 영역에서 최신 트렌드를 발맞춰가며 특히 하드웨어 영역에서는 개발시점과 판매시점이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해서 제품을 개발해야하는것이다. 수많은 벤처기업이 있지만 IT완제품을 개발해내는 벤처가 드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벤처의 도전정신 구조로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IT 제조업이라는 산업계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누가봐도 팬택은 시장의 1인자가 될 수 없는 회사였다. 시장의 구조가 말해주고, 벤처기업의 한계가 말해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존의 룰을 뒤엎는 자가 룰을 깨트리지 못하는 순간 빛바랜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2015년, 이미 시장은 나뉘어졌다. 제품들은 나날이 고스펙을 지향하며 기술적 임계치에 가까워져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실적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카테고리도 점차 노트북 카테고리가 밟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삼성에 아쉬워하던게 뭐던가. 바로 시장을 선도해나갈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오만가지 것들에 신경을 다 쓰며 시기를 잰다는거다. 메탈프레임 스마트폰도 그러했다. 메탈재질로 시장을 선도했나? 아니다. 사람들이 갤럭시S부터 그토록 플라스틱의 싸구려 느낌을 개선해달라고 외쳤지만 그 결과물은 4년이 지나 2014년에서야 갤럭시알파로 빛을 발했다. 그러면서 꿈에서 본것같다는 해시태그와 함께 작업공정 이미지를 공개했다. 마치 팬택의 베가아이언2가 그랬던 것 처럼, 베가 아이언2가 생각나는 홍보영상 비쥬얼과 함께. 애플과의 시시비비는 말할 가치도 없다.



누구는 이렇게 말한다. "안될 줄 알았으면 하질 말았어야지"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하는건 본인들의 몫이니 누구를 탓할까" 하지만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바꿔나가는 것이 아니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 가능성을 보고 달려드는 미친 바보들이 있기에 세상은 발전해나가는거다. 손익계산서 두들겨보고 사업가능성 없으면 발 싹 빼는 사람들이 아니라 단 하나의 개구멍이더라도 그 끝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보고 도전하고 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고 상식을 깨는 제품이 나오는 것이다. 혁신의 시작이다. 비록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팬택이 그랬다. 워크아웃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대기업의 홍보력에 밀렸지만 그들은 극한에 도전했고, 그 결과물이 베가아이언과 베가아이언2였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CNC가공을 통한 메탈 재질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출시한다는 것은 명백한 도박이다. 시장에서도 "과연 저걸로 될까" 싶었을거다. 회사의 전략가들도 그걸 생각하지 않았을리가 없다. 삼성과 LG가 나눠가진 시장에 프리미엄 제품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 이런 무모한 도전은 벤처정신 그 자체다. 안 될 줄 알면서도 만약에, 만약에를 믿고 도전하는 정신은 그래서 미련하지만 아름다운거다.


이미 한국의 IT 완제품 제조업은 삼성과 LG가 꽉 잡고있다. 팬택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한때 애플의 대항마로 불렸던 아이리버도 나가떨어지고, AK시리즈로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팬택과 같은 포지션의 기업은 꼭 필요하다. 정신나간놈들이 정신나간 방식으로 기존의 산업계에 딴지를 거는, 모두가 할 수 없다고 할때 도전하는 기업이 꼭 필요하다. 마치 1세대 벤처붐이 그러했듯이, 그런 도전에서 자극받고, 또 용기를 얻어 도전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이 사회에는 제조업과 같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도전해 최고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의 외침이 필요하다.


하지만 팬택의 몰락은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말해준다. 팬택은 우리나라 업계에 지울 수 없는 큰 획을 남겼다. 팬택이 베가아이언2의 판매 및 회사 자금유지를 위해 요청하던 통신3사 영업중지 중단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갤럭시S6 출시를 위한 SKT 영업정지 무기한 연기는 받아들여졌다. 이통사의 입김에 팬택에게 독이 될게 뻔하던 단통법도 강행되었다. 이 두가지 사실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것은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아니고서 정부에 뭘 바라면 안된다는것과 제조업에서 벤처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무슨 의미냐 하면, 어떤 난리를 쳐도 대기업이 잠식한 시장구조에서는 벤처기업 근간이 살아남을 수 없다. 아무리 도전정신을 가지고 도전하더라도 돌아오는건 뼈아픈 실패 뿐이다. 교과서 텍스트로만 봐오던 이론적인 내용을 실제 국내 예시로 떡하니 변환시켜놓았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젊은 창업가들에게 "도전하라. 도전하는자가 승리한다. 기존 구조에 반항하라. 대로의 입구가 그대를 기다린다" 와 같은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있겠는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막막한데, 그 누가 리스크를 껴안고 도전하고 싶을까. 제조업 기반의 벤처는 아마 더이상 나오기 힘들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팬택이 가졌던 정신을 가진 회사다.


산업계가 닫히면, 흐르는 물은 고인 물이 된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자금력과 유통망이 있기 때문에 현재 시장강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지, 그 근간이 위협받으면 팬택처럼 한번에 가버리는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문어발식으로 다양한 사업을 하는 대기업 오너가이고, 또 그룹이기에 10년이고 20년이고 그들은 건재할 것이지만.


끝으로, 대기업의 횡포에 분노하며 매일같이 삼성전자를 까던, 단통법으로 소비자가 불이익을 받는다며 시장구조를 욕하던, 이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며 정부를 욕하던, 산업계의 탈출구와 해법을 보여줄 수 있는 벤처기업과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는 그런걸 누가 쓰냐며 냉혹한 눈길을 보내던, 그리고 한없이 팬택에는 가혹한 혹평을 보내던 C모 커뮤니티에 이 글을 바친다. kt테크도 sk텔레시스도 진작에 가버린 시점에서 팬택 말고 누가 있었는가. 당신들의 이중성은 내가 끝까지 기억하겠다.


*포스팅에 사용된 사진은 VEGA 페이스북에 업로드된 이미지들로, 저작권은 팬택, VEGA에 있습니다.